본문 : 계시록 1:8
제목: 처믐과 나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서론>
이 세상에 무엇이든지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
그러나 그 시작이 어떤 시작이었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처음에 어떻게 시작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태도와 방향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용두사미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처음엔 대단하게 무엇을 시작했다가 흐지부지해지는 것을 말한다.
우리 각 사람의 인생도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시작했느냐가 그 사람의 인생을 결정짓는다.
누구나 태어나면서 부모를 선택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내가 태어나면서 만난 부모가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 내 인생은 결정이 된다.
살아가면서 어떤 스승을 만나고 어떤 친구를 만나는가가 그 사람의 인생의 방향이 결정된다.
미국에서 우스갯소리가 있다.
이민가는 사람들을 처음에 공항에 데리러 나오는 사람들이 누구인가에 따라 이민 생활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공항에 자기를 데리러 나온 사람이 가방장사면 자기도 가방장사를 하게 되고
옷장사면 옷 장사하게 되고 신발장사하면 신발 장사하게 된다는 것이다.
남의 나라에 가서 처음 만나는 사람이 그렇게 중요 하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본문에 예수님은 처음과 나중 알파와 오메가가 되시는 분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헬라어 원어에 알파는 알파벳의 처음글자 A 를 말하는 것이고 오메가는 끝 자의 오메가를 말하는 것이다.
이 말씀은 이 땅에 인간의 모습을 입고 오셨던 예수님은 우주만물의 시작이시며 끝이 되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이 주님과 인생을 시작한 사람인가 아닌가는 너무도 중요한 문제이다.
너는 누구인가? 네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사람인가?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나를 보내신 분도 주님이시오, 내가 마지막 갈 곳도 주님 품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면
그는 이 세상을 이미 승리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이다.
<본론> 처음과 나중 되시는 주님
1.역사의 주인이신 예수님(계시록1:7)
계시록1:7절은 예수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신다는 약속의 말씀이다.
기독교역사 학자들은 이날은 역사의 완성이라고 부릅니다.
성경은 이날을 “예수의 날“ 이라고도 부릅니다. 성경학자들은 “승리의 날” 이라고도 부른다.
2차 세계대전 때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개시되는 날을 D day 라고 불렀고, 2차 대전이 끝나는 날을 V day 라고 불렀다
즉 Victory day 라는 뜻이다.
역사학자들은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을 역사 의 시작과 끝으로 본다.
우리를 구원하러 이 땅에 오셨던 주님은 이제 이 땅을 심판하시러 반드시 오신다는 뜻이다.
- 역사를 보는 여러 가지 견해
1.순환론적 역사관
인도의 힌두교나 불교에서 주장하는 윤회설에 근거를 둔 역사관으로 돌고 도는 것이 역사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죽으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짐승으로 환생을 하기도 하고
착한 일을 많이 하면 다시 사람으로 환생하기도 한다고 믿는 역사관이다.
이런 역사관은 지금 안되면 훗날 다시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급할 것이 아무것도 없이
되면 되고 말면 말고 식의 인생을 살기 쉽다.
그래서 이런 역사관을 가진 나라들 마다 역사가 발전하지 못하고 오히려 뒷걸음질 치는 퇴행적 역사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2.실존적 역사관
우리는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다만 우리가 분명히 알고 있는 사실은 지금 여기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사실뿐이다.
이런 역사관을 가진 나라들은 역사란 오직 현재뿐이니까 목적도 없고 의미도 없고 알 수도 없다는 (불가지론)에 빠져
이 순간을 어떻게 즐길까에 몰두하여 타락한 쾌락주의를 만들어낸다.
3.목적론적 역사관 (종말론적 역사관, 기독교적 역사관)
순환론적 역사관을 원으로 표현한다면 실존적 역사관은 점으로 표현할수 있고
목적론적 역사관은 “선”으로 표현할 수 있다. 선은 반드시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
어디에선가 시작하여 반드시 끝이 온다는 역사관이다. 우리 인간은 모두가 시간과 공간속에 갇혀서 산다.
그 시간과 공간은 언젠간 끝이 난다. 기독교적 역사관은 시간이 그냥 흘러만 가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흘러가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즉 목적을 이루기 위해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믿는
종말론적 역사관을 말하는 것이다. 이 종말론적 역사관은 역사에만 국한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개개인 모두의 삶에도 적용이 된다.
우리들 개개인 모두는 우리 인생을 시작한 날이 있고 반드시 끝날 날이 있다.
즉 지금 이 시간이 흘러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시간이 되고 만다.
한번 흘러간 시간은 다시 돌이킬 수 없으므로 우리 인생을 적당히 살거나 의미 없이 흘려보내기에는 너무 심각한 인생인 것이다.
우리는 모두 단 한번 밖에 오지 않는 시간 속을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기독교 역사관은 모든 역사 속에 우리 개인의 시간 속에 개입하고 계시며
하나님께서 우리 개개인을 향한 목적을 갖고 계시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계획과 뜻 가운데서 걸어가는 사람들이라고 믿는 것이다.
우리 인생에는 목적이 있다. 그리고 의미 있는 삶이다.
그뿐 아니라 우리가 겪는 고난과 시련 속에도 목적과 의미가 있는 것이다.
모든 세계는 예수 그리스도를 분기점으로 가른다.
BC (예수님 오시기전) AD(예수님 오신 후) 로
성경에 예수님이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실 것을 예수님 태어나기 800년 전에
이사야와 미가라는 선지자가 예언을 했다. 그러나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는 만삭이 되어 갈릴리라는 곳에 있었다.
만일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태어난다면 이 성경은 거짓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당시 로마의 황제인 옥타비아누스가 온 천하는 다 호적을 하라고 명령을 내린다.
그래서 사람들이 호적을 만들러 고향으로 돌아간다.
요셉과 마리아도 만삭이 되어 호적하기 위해 베들레헴으로 돌라왔으나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와 잘 곳이 없어 마구간에 들어 가셨다가 거기서 예수를 낳은 것이다.
명령은 로마의 황제가 내렸지만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시는 분은 하나님이신 사실을 성경이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역사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내 개인의 주인도 되셨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내가 내 맘대로 내 인생을 살다가 더 이상 내 맘대로 사는 삶을 버리고
예수님이 주인이 되신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이 자신의 주인이 된 사람들에게는 그 예수님이 시작이요 끝이라고 고백하게 되어있다.
영원 전부터 계시던 하나님의 뜻과 목적 안에서 내 인생이 시작되었고 끝이 날 것을 분명히 믿게 되는 것이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사랑해서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다가 밧모섬이라는 작은 섬에 유배 되었다.
늙고 힘없는 요한이 홀로 갇힌 밧모섬에서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평생을 주님을 전하는 복음을 위해 살았는데 얼마나 절망햇을까?
그렇게 절망하고 있는 그에게 요한아 낙심하지 말고 두려워 말아라.
내가 처음과 나중이며 시작과 끝이니라”
이 말씀이 그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었을까?
아 주님은 여기에도 살아 계시는구나!
내가 혼자가 아니라 주님이 함께 하시는구나!
그래서 그는 용기를 얻고 인류 마지막에 심판 날에 이루어질 요한 계시록을 써내려 간 것이다.
예수님이 내 개인의 역사 속에 주인이 된 사실이 없는 사람들은 의미있고, 목적있는 삶을 살아낼 수가 없다.
끝없는 방황과 무질서한 삶이 지속될 뿐이다.
역사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정말 내 인생의 주인이 되셨는가
자신을 돌아보고 예수님이 인생의 주인이 되게 하는 내가 되어야 한다
2.인간의 삶과 죽음을 주관 하시는 주님(계시록1:18)
주님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신분으로 묘사 되어있다
.
여기서 음부란 죽은 사람이 거하는 곳 지옥을 말하는 것이다
.
하나님은 사람들을 위해 지옥을 만들지 않으셨다.
하나님을 대적한 마귀를 위해 지옥을 만드셨다.
마귀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하고 지옥으로 함께 가기 위해 별의별 방해를 다 하는 것이다.
한사람이 예수 믿는 것을 사탄이 얼마나 싫어하고 방해 하는지 알고 싶으시면
출애굽기를 깊이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출애굽기에 하나님께로 가려는 백성들을 방해하는 바로는 마귀의 그림자요 화신이다.
인간이 태어나는 것은 인생의 시작이요 그 끝은 죽음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죽으면 다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우리가 행한 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9:27에 사람이 한번 태어났다 죽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 심판이 있다.
사도 요한은 내가 이렇게 늙고 초라한 모습으로 이 섬에 갇혀 쓸쓸히 죽고 마는 것 아닌가 절망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때 주님이 그에게 말씀 하신 것입니다.
“나는 시작이요, 끝이다.
죽음 저 넘어 까지 주관하고 있는 모든 인생의 주인이니라”
이 말씀이 얼마나 큰 소망이 되었겠습니까?
요한뿐 아니라 예수님이 역사의 주인이시오, 내 인생의 주인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죽음도 이기신 부활의 주님이시며 죽음 저 너머에 영원한 하나님의 품이 존재함을 믿기 때문에
죽음 앞에서도 당당할수 있는 것입니다.
전도사 생활할 때 1년에 7명까지 장례를 치러 봤습니다.
가짜로 예수 믿은 사람들의 죽음은 100% 두려움에 떨며 죽거나 혀를 깨물며 죽기도 하고
손톱으로 자기살점아 뜯어지도록 할퀴고 죽기도하고
카펫을 뜯으며 죽기도 한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섬기다 죽은 사람들 하나같이 평안한 모습으로 임종을 한다.
그러나 진짜 주님을 만난 사람들의 얼굴에는 평살아 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
걱정근심 전혀 없네
사랑의 주 날 인도하니
내 모든 삶의 기쁨 늘 충만하네
롬8:35-39 영원히 승리하신 주님이 당신의 주인이신가?
<결론>
예수님이 내 인생의 시작이요 끝이시며
나를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는 주관자요, 주인이 되셨는가?
처음이요 나중이며 시작이요 끝이 되시는 주님 앞에서 내 신앙에 대해 진실해지자 .......
서비스 링크